길쭉한 맥도날드와 귀엽게 생긴 구름 한덩이

2020. 9. 7. 07:36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일기

잉림이 홈스테이 해주셨던 부모님 만나러 가던 길
50분쯤 남았을 때 보이는 길쭉한 맥도날드옆에 눈코입을 그려주고싶은 구름 한덩이가 있었다. 얼룩덜룩한건 앞유리에 붙은 벌레의 시체들.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꾸준히 쓰고싶다 라고 생각한지 오래됐지만 이제서야 일기를 쓰는것은 순전히 귀여운 구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름은 일기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다. 대개 내 일기를 이렇게 시작된다. 우연함이 계기를 만들지만 곧 잊혀지고 나는 어느새 쓰고있는 것이다. 왜 일기를 꾸준히 쓰지 못할까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면, 꾸준히 써야지 (다짐) 보다 꾸준히 써야돼 (의무) 의 느낌이 강해서 인 것 같은데 왜 일기를 꾸준히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일 무언가 잊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싫어서 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나를 두고 욕심이 없는 사람같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 나는 포기가 빠르고 눈치도 빠른 사람 쪽에 가깝다. 욕심을 부리면 대개 주변사람들이 싫어했고 나는 그게 싫어서 욕심을 포기하는것이다. 하지만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일기를 쓰는것보다 남의 일기를 읽는것을 더 좋아하는데 일기는 솔직하게 쓰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일기의 내용이 진실인가 와는 상관이 없다. 만약 거짓말이라해도 내가 그걸 알 턱이 없기 때문에 솔직하다고 믿는것이고, 표정과 말투 숨소리 등이 없는 텍스트는 대개 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기만) 텍스트의 소리를 듣는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복잡한 문장도 말보다 깔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순서를 바꿔 읽을수도있고 건너뛸수도 있다. 확실한건 나는 말보다 텍스트로 얘기할때 더 솔직한 편이며 듣는이가 정해져있지 않아야 부담을 덜 느끼는 편이다.
요새는 행복함, 안락함 이런 따듯한 감정들이 기본값이 됐다. 살도 찌고 많이 웃는다. 다만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는것에는 변함이없다. 다시말해 지금은 우울하지만 행복한 상태, 우울하지만 편안한 상태 인 것인데 나는 이게 썩 좋다. 억지로 괜찮아지려고 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것. 주변에서 힘든 일 이 있다고 털어놓을때 야 괜찮아질거야 잘될거야 이런 말보다 (으-싫어) 오예 우울세계에 온걸 환영해! 하고 (물론 마음속으로만) 사는게 그렇지뭐 라고 애늙은이 처럼 말하면서 듣는 사람이 되는것. 아니 듣는 사람보다는 그냥 “있는 사람이 되는것’ 이 좋다. 비밀을 나에게 털어놓을때도, 사실 나는 상대방의비밀에 관심이 없지만 얘기를 듣는건 좋아해서 들을땐 재밌고 듣고나서는 금방 잊어버린다. 기억을 하면 하겠지만 굳이 기억을 하지 않기때문에 (이건 비밀이건 아니건 똑같다) 어디서 말 할 일도 없는것이다. 그치만 나는 기억력이 좋은편이다. 대개 남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주변의 것들을 잘 기억한다 라고 말하고보니 나는 집중력이 없는 사람이 맞는것 같다. 아무튼 한참을 아무말이나 쓰고나니 잠이온다. 점심을 배불리먹고 그냥 자면 속이 더부룩해질것같아서 깨어있는김에 쓰는것이었는데 지금 자버릴 수 없다. 그치만 손목이 아파서 일기는 여기까지. 호스트 부모님 집 근처에 한적한, 그치만 엄청 큰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숲과 강과 폭포를 보았고, 강과 폭포를 보고있던 연인도 보았다. 우리 뒤에있는 사람들은. 강과 폭포를 보고있던 연인들을 보고있던 우리를 봤을 것이다. 모두 건강하기를.